[월간 러브차이나][1호 2016년 3월] 중국여행 - 상해 ( 2 판 )
푸동浦东
흔히, 외국(外国)하면심리적으로멀게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동성(山东)의 주요 도시들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내외면 도착 가능하고, 북경 , 상해 등 동부 주요 도시들도 비행기로 2시간 내외면 도착 가능합니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여행을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여행지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떠날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SNS나 여행 가이드에서 본 명소와 맛집에 대한 정보 정도만 확인 할 뿐 역사나 문화까지 세세하게 알아보고 떠날 여유가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런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본 지면을 통하여 중국 각 지역의 역사나 문화, 놓치면 안 될 명소,맛집을 소개할 예정입니다.먼저 3월과 4월은 상해(上海) 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해(上海 ,shanghai) 하면 제일 먼저 황푸(黄埔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동방의 빛나는 진주 구슬’이라는 거창한 뜻을 가진,동방명주,서쪽에 와이탄을 많이 떠올리게 되실껍니다..
右와이탄外滩
특히 와이탄은 만국건축박람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 중국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사진만으로 아름답지만 실제로 보면 이국적인 화려함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저녁에 일제히 점등하며 , 낮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와이탄의 풍경을 보면 황홀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 할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 속에 담긴 역사를 살펴보면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원래 상해는 척박한 땅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직도 여름은 덥고, 겨울은 습기가 많고 무척 춥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인근의 남경, 소주, 항주 등과 비교 했을 때 도시가 들어서기엔 적당하지 않았지요.
그랬던 이곳이 1842년 영국과 벌인 아편 전쟁이 끝난 후에 작은 어촌에서 세계적 도시로탈바꿈하게 되는 전기가 마련됩니다. 아편 전쟁 직후 ‘난징조약’에 따라 서구 무역상들은 중국에서 자유롭게 무역 할 수 있는 땅을 처음으로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고 , 중국의 광주, 하문, 복주, 영파 그리고 상해가 외국 거주민과 무역상에게 개방되면서 작은 어촌이 세계열강들이 대륙을 향해 들어오는 길목으로 변한 것이죠.
1843년 11월 17일 영국 영사인 조지 밸푸어가 정식으로 상하이의 개항을 선포한 이후 100년동안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열강에 의한 조계지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그들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 건물 양식이 상해 곳곳에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해는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지사들의 독립운동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교통이 편리하고,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조계가 있어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많은 독립지사들이 상하이에 모여들었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 정부가 상하이에서 수립 되기도 했습 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투척 사건이 일어난 곳이 상해의 ‘훙커우(虹口)공원’이랍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잠시 중국대륙의 경제중심지로써 남방지역 경제특구의 도전을 받기도 하였으나,1990년 중앙 정부의 상해 푸동신구의 개발과 개방을 계기로 다시 경제와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동방의 파리’라 불리는 상해의 역사를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셨나요?
이 짧은 내용이 상해 여행을 계획하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번 달은 여기서 끝맺음을 합니다.
<다음달 (2016.4월)은 상해의 맛집 ,명소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고문헌>
-도서 페이스 오브 상하이
-도서 상하이 100배 즐기기
<삽입 사진>
-필자가 직접 현지에서 촬영
만든이 - 권기백

